제목 [칼럼] 유학 후 첫 영어토론수업 '멘붕'... 이렇게 극복했다 2014-07-23 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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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표현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기.

 

나는 미국에서 6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특히, 세인트 존스라는 특별한 대학에 들어간 덕분에 4년 내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칸트, 헤겔 같은 고전 원서들을 읽으며 100% 토론 수업을 했다. 네이티브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가끔은 심지어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산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어, 어떻게 잘하는가?"에 대한 기사를 당당히 쓸 자격이 있다…"고 쓰고 싶지만, 이건 다 '뻥'이다.

왜냐면 내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난 영어를 못한다. 특히,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름 노력은 하는데 항상 못하는 안타까운 유형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공부 잘하는 한국 친구들보다 문법적으로도, 단어 면에서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인트 존스 대학 시리즈' 2부의 시작 글은 영어 못하는 내가 어떻게 4년간 미국 대학에서 어려운 고전들을 영어로 읽으며 100% 토론 수업인 학교에서 살아 남았는지, 그래도 어떻게 잘한다는 칭찬을 원어민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는 법

영어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영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 친구 영어 잘한다"는 말을 언제 쓰는가? 물론 토익, 토플 등 공인시험 점수가 높으면 영어를 잘할 확률이 높아진다. 기본이 쌓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토익 900점대의 대부분 사람이 다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시험의 한계다. 그렇다면 언제 정말 "이 친구는 진짜로 영어 잘해"라고 말하는 걸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그냥 그 친구가 나보다 잘하면 잘하는 거다. 나는 표현하지 못하는 걸, 그 친구는 표현할 수 있다면 나보다 잘하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 '영어를 진짜로 잘하는 사람'이 되는가? 답이 이미 나와 버렸다. 내가 어떤 말이 하고 싶은데, 그 말을 영어로 할 수 있다면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이렇게나 간단할 수가!) 즉,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영어를 잘하는 거로 생각한다.

"영어 잘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으니 좀 웃기다. 하지만 영어에 관해 앞으로 몇 편 더 쓸 예정인데 그 전에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소위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문법, 단어 정복, 시험 완전 타파, 원어민급 영어 정복 빵빵빵- 하는 그런 영어의 마스터가 됐기 때문에 그 스킬을 알리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경험한 영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난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는 법'을 기르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세인트 존스의 커리큘럼과 연관 지어서 영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세인트 존스 대학은 이전 기사들에서 자세히 설명했었지만, 4년간의 모든 대학 수업들이 고전 원서를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다. 

처음 세인트 존스에 입학했을 때, 그리고 첫 수업을 마친 후 내가 겪었던 패닉(?)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열정의 불길에 휩싸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첫 토론 수업을 하던 미국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시종일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하고 충격의 불길에 휩싸인 상태로 두 시간의 수업시간을 보냈다. 

교실을 나오며 "수업 어땠어?"하고 의견을 묻는 친구에게 "이해가 안 가"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응? 그래? 어떤 부분이?"라고 다시 묻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이 말 빠른 미국인들아!"라고 (속으로) 외쳤다.

세인트 존스에 입학할 때의 나는, 발표는커녕 토론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도 거의 불가능한 학생이었다. 뭐라도 말하고 싶어서 마음이라도 먹은 날은 열심히 머릿속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고 속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말을 입 밖에 꺼냈지만, 그 말 역시 자신없이 우물 우물거려 몇 번이고 다시 말해야 했다. 

아무것도 몰라 어리바리한 1학년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동시에 튜터(교수)들과 미팅을 잡고 수업시간에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관해 상담을 꾸준히 해 왔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내 온갖 문제점을 설명하느라 바빴다.

"토론 흐름은 너무 빠르고, 그래서 이해를 못할 때도 많고, 이해가 가면 나도 이런 저런 의견이 있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걸 말할까 말까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보면 또 어느새 주제가 바뀌어 버리고 그래서 말을 못하겠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우왕좌왕하며 여러 문제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튜터님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은 조언을 해 주셨다. 그건 바로 토론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멈추고 질문하라

내 의견을 제시하는 건 나중의 문제였다. 우선 제일 중요하게 익혀야 할 토론의 기본자세는 내 의견 발표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토론장 속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면 "잠깐만. 그래서 이게 왜 그런 거라고?"하고 다시 질문하고, 어떤 친구의 의견이 명료하지 않다면 "잠깐만, 그러니까 니 말은 이렇고 이렇다는 거야?"하고 다시 정리해 보는 것. 열정적인 논의가 오가던 토론의 흐름은 그렇게 함으로써 뚝- 끊겨버리겠지만, 그럼에도 이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라는 존재가 토론의 흐름 안에 있을 수 있고, 토론자들이 모두 함께 한발 뒤로 물러나 다시 생각하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은 어떤 토론에서든 유용하지만, 특히 나 같은 외국인 학생들의 입장에선 영어 토론을 따라가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나는 언어적인 문제로 이해가 가지 않아 "잠깐만, 지금 하고 있는 얘기를 다시 정리해보자"고 요구하는 것이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한 번 더 정리해 봄으로써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요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너 좋고 나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였다.

영어 토론의 첫 단계는 토론을 멈추고 질문함으로써 나를 토론의 흐름 속에 집어넣어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화의 흐름 속에 나를 놓아두고 있으면 반은 성공이다. 토론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더 큰 관문이 있었으니, 바로 나를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 그것이다.

읽어온 책, 또는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든, 아니면 심지어 토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반적인 대화라고 할지라도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오고 간다. 그런데 이때 외국인 학생으로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토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기뻐하며 모든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면 안 된다는 거다. 그게 딱 내 케이스였다.

내 생각의 주체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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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커피숍에서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 The Johnnie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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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의 나는, 사실 첫 단계인 흐름 속에 나를 놔두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는 것만도 바빴다. 매일같이 영어와 씨름하며 시간이 흐르니 언젠가부터 그래도 좀 힘을 덜 들이고도 친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는데, 그때부터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내 생각과 의견을 성장 시켜 나가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친구들이 이 말, 저 말을 하면 그 말을 이해했다는 기쁨에 젖어 "우와~ 구름이 녹색이라고? 그렇지! 구름은 녹색이지! 오하- 똥이 야광 색이라고? 그렇지! 똥은 야광이지!"하며 모든 의견들을 무조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무조건적인 수용은 내가 영어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애들은 원어민이니까 책 내용도 나보다 더 잘 이해했을 테고, 따라서 이들이 하는 말들은 다 맞을 거야. 나보다 다들 잘 아니까'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위험한 태도라는 걸 깨닫게 됐고 내자신을 믿고 주관을 길러내는 데까지 또 한참이 걸린 것 같다. 내 영어 실력보다는 나은 네이티브 친구들의 영어 실력에 의존할 수는 있지만, 내 생각과 사고방식마저 친구들에게 의존해 버리면 나란 존재는 한없이 작아질 뿐 아니라 나중에는 이 바람 저 바람에 휩쓸려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세인트 존스에서 4년간 훈련한 것이, 그리고 아직도 연습 중인 부분이 바로 나를 표현하는 법이었다. 내 주관을 길러내고, 생각을 발전 시키고, 그걸 적절한 매너와 함께 표현하는 것. 영어 공부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토론이라는 샛길로 샜는지 의아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토론과 영어 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면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이 원활하다'는 뜻이고, 그 기술은 영어 문법, 단어와는 상관없는 소통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토론은 한 차원 높은 소통이다. 그래서 토론을 잘한다는 것은 소통을 잘한다는 뜻이고, 소통을 잘할 줄 알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믿는다. 영어 그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내가 만약 교육 쪽으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정말 세인트존스에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토론 영어'라는 공부법을 개발해 보고 싶을 정도다(아, 이미 그런 게 있을지도 하하).  

영어는 소통이다

세인트 존스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다른 한국인들의 영어 실력에 비교해 보면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토론 수업을 통해 (제2외국어라는 한계가 있더라도 내 능력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해 보려고, 설명하려고 노력하게 됐고, 어떤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어도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질문할 수 있고 흐름을 늦출 수 있게 됐다.

그런 소통의 태도가 습관이 되고 나니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점점 어렵지 않아졌다. 대화 중에 이해가 안 되면 대개가 문화적인 요소를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때마다 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고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럼으로써 하나둘 문화적인 부분들에 대한 지식까지 쌓여나갔고 점점 친구들과 대화할 때 대화를 중단시키고 질문하는 상황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그 외 원어민들이 많이 쓰는 문장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따라 말하며 내 것으로 만들고, 내가 문법이나 단어 선택이 틀린 경우 지적해 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해 지적을 받으면서 공부했다.  

그럼에도 사실 아직도 내 영어는 많이 부족하고, 나는 맨날 문법을 틀리고 쉬운 단어들을 쓴다. 하지만 크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꾸준히 그 문화를 접하고 스스로 연습하면서, 끊임없이 노력은 해야겠지만,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오든 그 흐름에서 물러나 있지 않고, 언제든지 흐름을 내 쪽으로 끌어올 수 있으며,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한다.

이렇게 영어에 관한, 하지만 토론에 관한 글을 첫 글로 시작하게 됐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으로 영어가 돼야 이런 것도 가능하지'하고 생각하셨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 말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어버버 거리더라도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정말 최소한으로, 어느 정도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본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5459)